2025. 8. 12. 22:15ㆍ그리움의 온도
이제는 연애도 이별도 쉽게 소비되지만
어릴 땐 늘 참 열심히였다.
열심히 사랑하고 열심히 슬퍼하고
흔했지만 아팠던 이별을 견뎌낸 시간들이 가끔 떠오른다.
이별이 쉬웠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.
누구와 어떤 이별을 하든 헤어짐은 늘 아팠다.
짧은 한때나마 세상에서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자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.
그런 사람과 헤어지면서 슬프지 않을 수 있을까.
이별은 갑작스레 왔다.
그리고 아픔은 서로가 원하는 걸 서로가 줄 수 없다는 깨달을 때 한 번,
그리워해도 다시는 그 사람에 닿을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데 또 한번,
꾸준하게 찾아온다.
가슴에 구멍이 나는 것 같은 아픔이.
이별하는 딸이 안쓰러운 어머니는 며칠 전 딸이 먹고 싶다던 반찬을 준비하고
식탁에선 웃음기 잃은 딸을 위로하고픈 아버지가 조심스런 말투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며
가족이 또 다시 내 이별을 함께 겪는다.
서툴게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.
괜스레 죄송한 마음이 늘어간다.
왜 이별하는 사람들이 머리를 자르는지 알 것 같다.
거울 속의 내가 어제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걸 확인받고 싶다.
이제 달라질 내 모습을 믿어보고 싶다.
헤어짐 뒤에 오는 시간들이 이 머리카락들처럼 조금 더 가벼워졌으면 좋겠다.
네가 이렇게 나를 떠나면 이대로 죽어버리겠다 말한 이도 있었다.
긴 시간을 두고 기다릴 테니 먼 길을 돌아서라도 돌아오라 한 이도 있었다.
이별 후 홀로 떠난 여행에서의 추억을 주섬주섬 챙겨 선물꾸러미를 보낸 이도 있었다.
너 때문에 이제 이후의 삶은 다시 예전처럼은 돌아갈 수 없을 거라 한 이도 있었다.
난 모두 이해하지 못했다.
모든 게 지나가리란 걸 알고 있었고 사람은 그리 쉽게 죽지 않는다고도 답해주었다.
뒤늦게 열병처럼 사랑을 앓던 시절, 내가 주는 상처에 한껏 지친 표정으로 헤어지며 그는 내게 말했다.
대부분 이미 지난 사춘기를 넌 이제야 겪는구나.
이미 서른이 지난 나이였다.
지금 아픈 것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.
그를 죽도록 사랑했다고도 말 못하겠다.
다시 시작했을 때 잘할 자신도 없거니와 그걸 원하는지도 사실 모르겠다.
그냥 아프다.
누군가를 앞으로의 날들 중 일부를 함께할 사람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나면
그걸 애써 부인하고 다시 지워야할 때 훨씬 더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.
어느 정도 자신을 버려야 하기에 아플 수밖에 없다.
눈을 뜨면 자꾸 이별한 사실이 떠올라 견딜 수가 없다.
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불쑥, 이를 닦다가도 불쑥,
이제 더 이상 아무렇지 않게 뭐해, 라는 안부를 물을 수도
소소한 내 일상을 나눌 수도 없단 사실이 떠올라 순간 멍해진다.
무엇보다 내 삶의 균형의 한쪽 끝을 잡아주던 이가 이제는 더 이상 곁에 없다.
그 빈 공간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지 그 사람이 있던 자리에 다른 누구를 앉혀야 하는 건지
그냥 가슴 한켠에 구멍이 난 채 버텨야 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.
입맛을 잃어 살이 좀 빠지고 길을 걷다 한 번쯤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춘 채 큰 숨을 들이쉬게 되고
흔하디 흔한 사랑노래를 듣다 생각도 못한 순간에 눈물이 주룩 흐르고
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술자리에서 옛생각에 빠져들게 될 때
그래서 차라리 다른 생각할 틈없이 바쁜 일상이 그리워져야
그런 시간들이 몇 번을 지나야 비로소 일상에서 이별을 털어낼 수 있을 거다.
아직은 한참, 그 시간을 버텨야 한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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